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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인문학 2024. 5. 18. 09:59반응형SMALL
1, 개요
“안셀무스”(Anselmus Cantuariensis, Anselm of Canterbury 1033~1109)는 중세 초기의 유명한 철학자, 신학자, 캔터베리 대주교로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저작과 사상은 중세 서구 철학과 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존재론적 신의 존재 논증과 십자군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의 아오스타(현재 피에몬테 주)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종교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인 르 벡(L'Abbaye Notre-Dame du Bec)에 입회하여 수도사가 되었고 이후 수도원장이 되었습니다. 1093년 캔터베리 대주교로 서임되었으나 당시 교권에 간섭하는 영국 국왕 “윌리엄 2세” 와의 갈등으로 인해 1097년과 1106년 두 차례 망명을 하게 됩니다. 망명 중에도 그는 왕권과 교권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 속에서 신학적, 철학적 저술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1494년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시성하였으며 축일은 4월 21일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일부 개신교(성공회, 루터교)에서 이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안셀무스”의 철학과 신학은 중세 사상과 이후의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존재론적 논증은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등 여러 철학자들에게 논의되고 평가되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다루는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집니다.
1-1. 존재론적 논증 (Ontological Argument)
“안셀무스”의 가장 중요한 기여 중 하나는 '프로슬로기온(Proslogion)'에서 제시된 존재론적 신의 존재 증명입니다. 그는 “신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존재이며, 그러한 존재는 실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논증은 "신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이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하여 “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이 생각될 수 없다”라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1-2. 교리적 신학
그의 또 다른 중요한 저작 '모놀로기온’(Monologion)과 '신은 왜 사람이 되었는가?’(Cur Deus Homo)에서는 기독교 신학의 기본 교리를 다룹니다. 특히 '신은 왜 사람이 되었는가?'에서는 인간의 구속을 위한 신의 강생(성육신) 교리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fides quaerens intellectum)는 유명한 격언을 남겼는데 이는 “신앙이 이성의 바탕이 되며 신앙을 통해서만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2. 내용
“안셀무스”는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깊이 있는 사상과 논증은 오늘날까지도 철학과 신학 분야에서 널리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것은 그의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입니다.
2-1. 존재론적 증명의 배경
“안셀무스”는 그의 저작 ‘프로슬로기온’(Proslogion)에서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이 논증은 신의 존재를 순수하게 논리적, 이성적 추론을 통해 증명하려는 시도로 그는 이를 통해 신앙을 이성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fides quaerens intellectum)라는 유명한 격언은 신앙이 이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합니다.
2-2. 존재론적 증명의 내용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구조를 가집니다.
2-2-1. 신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God is a being than which nothing greater can be conceived.)
2-2-2. 존재하지 않는 신은 존재하는 신보다 덜 위대하다. (A God that exists only in the understanding is less great than a God that exists in reality.)
2-2-3. 따라서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Therefore, God must exist.)
“안셀무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신은 가장 위대한 존재로 정의되는데 이러한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위대한 존재가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합니다.
2-3. 반론과 평가
존재론적 증명은 즉각적인 반론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반론은 그의 동시대인인 “가우닐로”(Gaunilo)가 제기한 것으로 ‘어리석은 사람을 위한 변호’(In Behalf of the Fool)라는 글에서 “안셀무스”의 논증에 반박하며 다음과 같은 예시를 제시했습니다. “가우닐로”는 "가장 완벽한 섬(the greatest conceivable island)"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이 섬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개념 자체는 여전히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논증이 “안셀무스”의 논증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하며 존재론적 증명이 실제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안셀무스”는 “가우닐로”의 반론에 대해 "가장 완벽한 섬"과 같은 개념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은 본질적으로 존재론적 개념 속에서 완전함을 가지는 반면 섬과 같은 구체적 사물은 본질적으로 그러한 완전함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4. 후대 철학자들의 평가
2-4-1.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을 비판했는데 그는 인간의 이성이 신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존재론적 증명은 이성적 증명이 아니라 신앙에 기초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자연적 증거를 통해 증명하려는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을 선호했습니다.
2-4-2. 르네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을 발전시켜 자신의 철학 체계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명상록’(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에서 신의 존재를 완전한 존재로서 개념화하고 그러한 존재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안셀무스”의 논증을 통해 신의 존재가 자명하다고 보았습니다.
2-4-3. 이마누엘 칸트
“칸트”는 ‘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에서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을 비판했는데 그는 존재가 본질적 속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존재론적 증명의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칸트”는 "존재는 실체가 아니라 사물의 상태이다" 라며 존재론적 증명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2-4-4. 고트로브 프레게와 버트런트 러셀
현대 논리학의 선구자인 “프레게”와 “러셀”은 존재론적 증명의 논리적 구조를 분석했습니다. “러셀”은 존재가 술어가 아니라 정량자(quantifier)라는 점을 강조하며 존재론적 증명이 범주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존재론적 증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5. 존재론적 증명의 현대적 의미
현대 철학에서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이 여전히 중요한 논의의 주제로 다뤄지는데 이 논증은 단순히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로서가 아니라 존재와 개념, 논리의 관계를 탐구하는 중요한 철학적 도구로 여겨집니다. 특히 형이상학적 논의에서 존재론적 논증은 존재의 본질과 그 의미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은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탐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으로 신학적 논의뿐만 아니라 철학적 탐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논증은 단순히 신의 존재를 논증하려는 시도를 넘어서 인간 이성이 어떻게 최고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더 높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3. 결론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은 중세 철학과 신학의 중요한 이정표로 그의 논증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며 논리적 추론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비록 많은 비판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의 ‘존재론적 논증’은 오늘날까지도 철학적, 신학적 논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여전히 깊이 있는 탐구의 주제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위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안셀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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