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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 하나보다 적은(Less Than One)인문학 2025. 4. 16. 11:18728x90반응형
1. 개요
소련의 억압 속에서 시적 자유를 외친 노벨문학상 수상자 "조셉 브로드스키"(Iosif Aleksandrovich Brodsky 1940~1996)는 러시아계 미국인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문인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삶과 작품은 망명, 언어에 대한 집요한 탐구, 시간과 존재의 무게를 오롯이 담아냅니다. 1940년 5월 24일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대계 가정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15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 노동자, 병원 조무사 등 다양한 일을 하며 독학으로 문학과 철학을 탐독했는데 특히 영미 시인 “존 던”(John Donne 1572~1631)과 “W.H. 오든”(Wystan Hugh Auden 1907~1973)에게 깊은 영향을 받으며 시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초 그의 시는 당국에 의해 퇴폐적으로 낙인찍혀 1964년 "사회 기생충"이라는 누명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5년 간 북극권 근처 노동 수용소로 추방됩니다. 이 재판에서 판사의 "시인이 될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에 “브로드스키”는 단호하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시인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사건은 국제 사회의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안나 아흐마토바”(Анна Ахматова 1889~1966) 등 동시대 지식인들의 지지로 1년 만에 석방됩니다. 1972년 소련 정부는 그를 강제로 추방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미시간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등에서 시를 가르치며 영어로도 작품을 써나갔습니다. 198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포괄적인 시적 시야와 명료한 언어적 열정으로 인간의 조건을 통찰했다”라고 인정받으며 1991년에는 미국 최초의 외국인 출신 시인협회장(미국 시인상임시인)이 되었습니다.
“브로드스키”의 시는 고독, 망명, 시간의 흐름을 주제로 합니다. "시는 언어를 초월하는 도구"라 믿었던 그는 러시아어와 영어를 오가며 언어 자체를 탐구했습니다. "시간이 인간을 파괴하지만, 시는 시간을 이깁니다." 이 같은 신념은 시 ‘크리스마스 별’에서도 드러나며 역사의 폭력 속에서도 예술의 영속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러시아 문학 전통과 서양 모더니즘을 융합했는데 “던”과 “오든”의 형이상학적 시풍을 러시아 서정시에 접목하며 독창적인 목소리를 창조했으며 에세이스트로서도 탁월해 ‘비애와 이성’(1995)에서는 문학, 정치, 개인의 기억을 날카롭게 해석합니다.
1996년 심장병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브로드스키”는 "시인은 세상의 민족주의를 치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고통을 예술로 전환하는 힘을 보여주며 현대 시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헝가리 작가 “케르테스 임레”(Kertész Imre 1929~2016)는 "브로드스키는 우리 시대 가장 용감한 문학적 양심이었다."라고 평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의 시는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사랑받으며 자유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울림을 전합니다.
1-1. 품사(A Part of Speech 1977)
언어와 존재에 대한 탐구를 담은 초기 영어 시집으로 “브로드스키”는 망명 후 영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시집은 그 시도의 본격적인 결실입니다. 시들은 러시아어 특유의 강한 리듬감을 영어로 옮겨오려는 노력이 두드러지며 고독과 이방인의 시선을 품고 있습니다.
1-2. 우라니아에게(To Urania 1988)
그리스 신화 중 천문학의 뮤즈 “우라니아”를 제목으로 삼은 시집으로 시적 영감의 근원을 질문하며 인간과 우주, 영원과 찰나의 시간 사이의 관계를 탐색합니다. “브로드스키” 특유의 철학적 사유와 유배자의 정서가 깊게 배어 있습니다.
1-3. 하나보다 적은(Less Than One: Selected Essays 1986)
노벨문학상 수상의 핵심 계기가 된 산문집으로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오시프 만델슈탐”, “오든” 등 문학가들에 대한 깊은 비평과 함께 망명자이자 독립적 지성인의 시각이 드러납니다. 제목인 ‘하나보다 작음’은 “브로드스키”가 느낀 망명자의 정체성과 존재론적 불안을 상징합니다.
1-4. 워터마크(Watermark 1992)
“브로드스키”가 매년 겨울 머물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대한 아름다운 산문으로 도시의 물안개, 고요함, 예술적 감성을 시인의 언어로 그려냅니다. 여행 에세이라기보다는 장소에 대한 철학적 명상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베네치아는 물이 시간을 더디게 흐르게 만드는 곳이다.”
2. 내용
이 작품은 시인이자 망명자로서의 자의식, 언어에 대한 철학적 성찰, 문학과 정치 사이의 긴장 속에서 빚어진 지적 고백록으로 1986년 출간 당시부터 비평가와 독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1987년 “브로드스키”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2-1. 유배된 언어의 자서전
‘Less Than One’(하나보다 적은), 이 제목에는 “브로드스키”가 겪어야 했던 정치적 추방과 문화적 단절 그리고 언어적 이방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시를 썼고 소비에트 체제의 검열과 억압 속에서 망명했습니다. 이후 영어를 제2의 언어로 받아들이며 문학 활동을 이어갔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모국어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그런 언어 사이의 균열, 존재의 경계에 선 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유년기와 성장기 특히 1940~50년대 레닌그라드의 풍경을 생생하게 회고하는데 그 회고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언어를 둘러싼 감각의 발달과 시인의 탄생으로 향하는 서사로 이어집니다. 그는 언어가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는 유일한 도구라고 말하며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문학으로 정제되는지를 보여줍니다.
2-2. 시인을 위한 초상들
‘Less Than One’의 핵심은 문학적 초상화로 “브로드스키”는 자신이 사랑한 시인들 “오시프 만델슈탐”, “안나 아흐마토바”, “W. H. 오든”에 대한 비평적 성찰을 통해 시인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오든”에 대한 에세이 ‘To Please a Shadow’는 단순한 찬사가 아닌 언어적 형식과 윤리적 태도에 대한 깊은 대화입니다. “브로드스키”는 “오든”의 시를 ‘윤리적 기하학’이라 부르며 시가 도덕적 구조를 지닐 수 있다고 봅니다. “아흐마토바”에 대한 회고는 더욱 내밀한데 그는 젊은 시절 “아흐마토바”를 직접 만난 적이 있으며 그녀에게 문학적 후계자로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그는 “아흐마토바”를 “시의 여제”라고 부르며 그녀의 시에서 느낀 시간의 밀도와 침묵의 힘을 예찬합니다. 이런 문학적 초상들은 단순한 평론을 넘어 시인과 시인 사이의 세대를 건너는 대화로 기능합니다. 그는 문학을 시간에 저항하는 유일한 도구라 믿었고 시인의 언어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2-3. 정치와 문학의 경계
그는 정치적 추방자였지만 ‘Less Than One’은 단순한 정치비평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그는 체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언어의 자유를 옹호하고 문학이 정치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강하게 피력합니다. 레닌그라드라는 도시의 이름과 풍경이 어떻게 소비에트 체제에 의해 왜곡되었는지를 비판하며 도시의 기억이 언어를 통해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문학이 단순한 저항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변혁시키는 윤리적 힘이라고 봅니다. “시는 인간의 감수성을 다듬는다. 그것이 정치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다.”라는 문장은 그가 시와 산문, 문학 전반에 걸쳐 견지한 태도를 함축적으로 드러냅니다.
2-4. 언어의 망명자
이 작품은 이중 언어 작가로서 “브로드스키”의 고뇌와 실험이 담긴 책이기도 한데 그는 영어를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러시아어에서 느끼는 감각의 풍요로움을 그리워합니다. 영어로 쓴 산문은 간결하고 날카롭지만 그 안에는 러시아 시 전통의 밀도가 살아 숨 쉬며 이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문화와 정체성을 횡단하는 시적 실험입니다. 그는 언어를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보지 않고 언어 자체가 인간의 존재를 규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학이 시간에 대한 복수이며, 산문이야말로 기억과 언어가 가장 정직하게 만나는 공간이라 여깁니다.
3. 결론
이 작품은 언어의 경계에 선 이들, 이주자, 망명자, 다중정체성을 지닌 현대인에게 문학이 어떻게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며 또한 문학이 어떻게 체제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 윤리적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브로드스키”의 산문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단순한 수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고통, 추방, 망명, 사유의 깊이에서 비롯된 언어의 결정체입니다.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조셉 브로드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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