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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3. 에로스, 달콤 쌉쌀함(Eros the Bittersweet)
    인문학 2025. 6. 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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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캐나다 문학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이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인 “앤 패트리샤 카슨”(Anne Patricia Carson 1950~)은 단순한 시인이 아닌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혁명가입니다. 1950년 6월 21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그녀는 고대 그리스 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시, 에세이, 번역, 비평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는데 그녀의 작품은 전통적인 문학 범주를 거부하며 "분류 불가능하다"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녀의 문학적 여정은 고등학교 시절 한 라틴어 교사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교사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녀에게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쳤고 이 경험은 카슨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토론토 대학교에 진학했으나 경직된 교과과정에 실망해 두 번이나 중퇴하기도 했으며 잠시 그래픽 아트 분야에 몸담았지만 결국 대학으로 돌아와 1974년 학사, 1975년 석사, 1981년 박사 학위를 고전학 분야에서 취득했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공부한 그리스 운율학은 그녀의 시적 실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호메로스”, “사포”부터 “에밀리 디킨슨”, “프란츠 카프카”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작품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참조로 가득합니다. ‘잃어버린 것의 경제학(Economy of the Unlost 1999)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 Simonides 기원전 556~기원전 468)와 현대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 루마니아 출신 유대계 시인)을 연결하며 상실의 시학을 탐구합니다. “카슨”은 종종 스스로를 언어 예술가라기보다 시각 예술가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던 경험은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는 작품 세계로 이어지며 알츠하이머를 앓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형의 죽음, 이혼 경험 등 개인적 상처를 작품화하지만 이를 감정에 호소하는 고백적 시와 달리 철학적 질문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녀는 "삶의 경험을 세계의 수많은 사실 중 하나로 민주적으로 사용한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카슨”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마거릿 애트우드”, “하루키 무라카미”, “한 강” 등과 함께 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2년 영국 왕립문학회 국제 작가로 선정되고 2023년에는 고전학회 명예 회장으로 추대된 것은 그녀의 학문적·문학적 영향력을 증명합니다.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오직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낄 뿐이다"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그녀는 사라진 고대 시인의 목소리를 되살리면서 동시에 동시대인의 정서를 포착하는 희귀한 재능을 지닌 작가입니다. 그녀의 글쓰기는 시와 학문, 개인사와 신화, 고대와 포스트모더니즘이 교차하는 제3의 공간을 창조하며 문학이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합니다. 그녀의 책을 덮을 때 독자는 고대 그리스어 수업에서 그녀를 깨운 그 교사처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에 눈뜨게 될 것입니다.

     

    1-1. 에로스, 달콤 쌉쌀함(Eros the Bittersweet 1986)

    첫 저서 ‘에로스, 달콤 쌉쌀함(Eros the Bittersweet 1986)은 그녀의 박사 논문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그리스 시인 “사포”(Sappho 기원전 630~기원전 570)가 창조한 단어 "글리쿠픽론"(glukupikron: 달콤 쌉싸름함)을 통해 사랑의 쾌락과 고통의 이중성을 분석했습니다. 이 책은 고전학계와 문학계를 동시에 충격에 빠뜨리며 그녀의 시적·학문적 접근법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1-2. ‘레드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Red 1998)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중 일곱 번째인 “게리온”(빨간 날개를 가진 괴물) 이야기를 현대적 성장 소설로 변주했습니다. “게리온”을 감수성 강한 청년으로 재탄생시킨 이 작품은 퀘벡 문학상(QSPELL)을 수상했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2013년 출간된 속편 ‘레드 독’(Red Doc)에서는 더욱 초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게리온”과 “헤라클레스”(사드와 G로 이름 변경)의 여정이 이어집니다.

     

    1-3. ‘남편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the Husband 2001)

    29개의 탱고로 이혼의 고통을 탐구하여 여성 최초로 “T.S. 엘리엇”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글래스,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에 수록된 ‘유리 에세이’에서는 어머니 집을 방문한 화자가 실패한 연애를 성찰하며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과 대화하는 다층적 서사를 보여줍니다.

    2. 내용

     

    1986년 출간된 이 작품은 “카슨”의 데뷔작이자 고전학 박사 논문을 재구성한 역작으로 "생업으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친다"는 카슨의 자기소개처럼 고대 문헌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현대적 통찰이 교차하며 “사포”가 창조한 단어 ‘glukupikron'(달콤 쌉살함)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해부합니다. "에로스는 경계의 문제다. 그는 특정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손이 닿기 직전의 간격,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사랑해'와 '나도 사랑해' 사이의 틈에서 욕망의 부재적 존재가 깨어난다".

     

    2-1. 욕망의 기하학: 삼각형 구조의 비밀

    “카슨”은 고대 텍스트에서 발견한 욕망의 보편적 패턴을 규명합니다. 연인, 사랑받는 자, 장애물의 삼각형 구조에서 진정한 욕망은 가로막힘에 의해 촉발되는데 크레타의 납치 풍습을 예로 들면 청년을 납치하는 연출된 저항이 오히려 그의 매력을 증폭시켰으며 장벽이 없는 평탄한 사랑은 욕망을 사그라지게 합니다.

     

    2-2. 문자화된 욕망

    “카슨”의 가장 도발적인 주장은 "문해력(literacy)과 에로스의 상관관계"로 서사시의 구전 전통에서 글쓰기로 전환된 고대 그리스에서 에로스가 신격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파벳화는 에로틱한 행위다. 모음은 움직임을, 자음은 경계를 상징하며 완전한 융합은 영원히 달성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2-2-1. 구술 문화: 즉각적 소통 → 욕망의 직접적 표현

    2-2-2. 문자 문화: 시간적 격차 생성 → 갈망의 지연과 심화

     

    2-3. 현대적 욕망의 원형적 투사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구형 인간(球形人間) 이야기는 “카슨”의 해석에서 새 생명을 얻습니다. 신화에서는 인간이 원래 구형이었으나 “제우스”가 반으로 갈라 분리하였다고 말하나 “카슨”은 "반쪽 찾기" 신화는 욕망의 근본적 오해를 드러내며 상대방을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는 "에로스가 결핍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연결고리는 “라캉”의 ‘실재계의 부재’에서 “조르주 바타유”의 ‘저주받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현대 심리학의 “부재에 대한 욕망”(lack as desire) 개념과 놀랍게 조응합니다.

     

    2-4. 사랑의 시학

    이 책은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라 읽기와 사랑하기의 동질성에 대한 선언으로 "소설은 에로스의 속임수를 제도화한다. 독자는 등장인물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그들의 욕망을 좇고 갈망을 공유하되 동시에 초연해진다. 이는 사랑에 빠진 상태와 거의 유사하다"라고 말합니다. “카슨”에게 욕망은 "알지 못함에서 아는 것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전율이며 그녀의 글쓰기는 학문의 경직성을 깨고 독자를 2,500년 전 “사포”가 서 있던 레스보스 섬의 바람 속으로 데려갑니다.

     

    3. 결론

     

    인스타그램의 완벽한 연애 노출, 짝사랑의 감정을 계산하는 알고리즘 등 현대인은 달콤함만을 추구하며 쓴맛을 제거하려 합니다. “카슨”은 "계산적인 사랑은 위험하다.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 감정은 에로스가 아니다"라고 경고하며 "에로스는 '지금'이라는 순간에 시작된다. 그 순간을 거부하는 자는 인간다움을 포기한 것과 같다"라고 설파합니다. 이 작품은 욕망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가 진짜로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해주며 반쪽을 찾아 헤매는 구형 인간의 여정이 끝나지 않는 이유임을 설명합니다.

     

     

     

     

    "에로스는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손이 닿기 직전의 간격, '사랑해'와 '나도 사랑해' 사이의 틈이

    욕망의 본질이다" (앤 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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