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 계급의 숨은 상처(The hidden Injuries of Class)
1. 개요
1943년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리처드 센넷”(Richard Sennett 1943~)은 인종적, 계층적 다양성이 혼재된 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첼로 연주자로 주목받았던 그는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진학하여 음악가의 꿈을 키웠으나 운명적인 손 부상으로 연주가의 길이 막히자 학문의 세계로 방향을 틀었는데 이 독특한 전환은 후일 그가 예술과 사회학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 1909~2002), “에릭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1902~1994) 같은 거장들의 지도 아래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뉴욕대(LSE)와 런던정경대(LSE)에서 교수직을 맡으며 본격적인 학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소설가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 1940~1996)와 함께 뉴욕 인문학 연구소를 설립해 학제 간 연구의 선구적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1-1. 센넷의 도시 사회학
“센넷”의 초기 연구는 도시 공간이 인간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되었습니다. 1970년 출간된 ‘무질서의 용도’에서는 도시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오히려 개인의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질서 과잉의 도시는 인간을 유약하게 만든다"라고 경고하며 도시의 소위 문제점으로 여겨지던 요소들(다양성, 충돌, 예측불가능성)이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어서 ‘공적인 인간의 몰락’(1977)에서는 공공 영역의 위기를 역사적으로 분석했습니다. 18~19세기 런던, 파리, 뉴욕의 카페, 광장, 공원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던 공적 대화가 20세기에 들어 사적 공간으로 후퇴했다고 지적했는데 이로 인해 타인과의 소통 능력이 퇴화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킨다고 진단했습니다.
1-2. 신자본주의 비판
“센넷”은 1990년대 후반부터 자본주의 구조 변화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충격을 연구했습니다. 보스턴의 노동계층 150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계급의 숨은 상처’(1972)는 경제적 불평등보다 더 깊은 문제인 존엄성의 상실을 포착했는데 한 인터뷰 대상자의 "내 아들은 내가 단순 노동자라고 말할 때 눈빛이 변해. 그 눈빛이 나를 죽여."라는 고백이 압축적입니다. ‘성격의 붕괴’(1998)에서는 신자본주의의 유연성(flexibility)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파괴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단기 계약, 재구조화, 끊임없는 기술 재교육이 안정적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삶이 단편화되면 신뢰와 충성심이 사라진다"는 그의 통찰은 21세기 잉여화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3. 손이 기억하는 지혜
“센넷”은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장인’(2008)에서 그는 "공예정신은 그 자체를 위해 일을 잘 해내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 충동"이라고 정의하며 단순히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닌 몰입과 숙련을 통해 세계와 대화하는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프로그래머, 의사, 예술가, 심지어 육아를 하는 부모도 장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함께’(2012)에서는 협력의 사회학을 탐구했습니다. 도시 계획에서 직장 문화에 이르기까지 불완전한 타인과의 소통 기술이 왜 필요한지 분석하며 "대화는 완벽한 이해가 아닌 서로의 간극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라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1-4. 공연자로서의 인간
2024년 출간된 ‘공연자: 예술, 삶, 정치’에서는 자신의 일생의 연구를 종합합니다. 연주가 경험을 사회학에 접목한 그는 "모든 인간은 무대 위에 서 있다"는 메타포로 일상의 수행성(performativity)을 분석합니다. 정치 연설에서 SNS 게시 글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관객을 의식하며 자신을 연출합니다. 그러나 “센넷”이 경계하는 것은 진정성의 상실입니다. "가면이 진짜 얼굴이 되는 순간 우리는 타인과의 진실한 만남을 포기하게 된다"라고 그는 경고합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공공 공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확장하며 "가상 연결이 증가할수록 물리적 만남의 질이 중요해진다"는 역설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5. 오늘날의 울림
“센넷”의 작업은 분석과 실천의 이중주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가 50년 넘게 일관되게 탐구한 핵심 질문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로 그의 통찰은 물리적 공유 공간의 소멸이 협력 문화에 미치는 영향(재택근무 확산), 기술 숙련보다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의 부상(AI 시대 노동), 스마트 시티 열풍 속 인간적 온도 유지 방안(도시 계획 트렌드) 등과 같은 현대적 쟁점에 날카로운 빛을 비춥니다. “센넷”은 사회학을 "경험의 유능한 해석자 되기"라고 정의했습니다. 그의 글은 이론적 깊이와 문학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희귀한 사례로 이 82세의 현역 학자는 여전히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열린 미래를 위한 윤리적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한 공존의 기술에 대한 매뉴얼입니다.
2. 내용
1972년 젊은 사회학자 “리처드 센넷”과 “조너선 코브”(Jonathan Cobb)가 발표한 이 책은 미국 보스턴의 노동계층 100여 가구를 심층 인터뷰한 혁명적 연구로 당시 그들은 노동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근원이 단순한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능력주의 신화와 자기 입증의 강박에 있음을 폭로했습니다. 2023년 영국 “버소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이 책의 서문에서 “센넷”은 "과거 사회적 지위의 문제였던 상처가 이제는 생존의 위협으로 변했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는데 이는 이 책의 출간 반세기가 넘게 지났는데도 오히려 더 악화된 현실을 비춥니다.
2-1. 상처의 핵심
그들이 발견한 노동계급의 비극은 이중고에 있는데 첫째, 사회가 요구하는 자율, 자립, 독립이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한 인터뷰 대상자의 "아들이 내가 단순 노동자라고 말할 때의 눈빛이 나를 죽여"라는 고백이 압축적으로 이를 설명해 주며 육체노동자 “프랭크”는 은행원을 종이 밀어 넣는 일이라 경멸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일이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받는다는 수치심에 시달립니다. 둘째는 내면화된 계급 갈등으로 “센넷”은 "계급이 인간 사이의 투쟁을 개인 내부의 투쟁으로 전환시킨다."라고 지적합니다. 노동자들은 상사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에서의 소외를 자신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데 연봉 동결 시 회사가 아닌 자신의 선택을 탓하는 현대 직장인의 모습과 꼭 닮아 있습니다.
2-2. 희생의 역설
가장 통렬한 분석은 희생의 메커니즘에 대한 것으로 “센넷”은 노동자들이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존엄을 증명하려 하지만 이게 역설적으로 계급의 족쇄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아버지의 밤샘 작업은 자식에게 부담이 되고 대학에 간 자식은 계급을 초월함으로써 부모와의 정서적 단절을 경험합니다. 노동자들조차 서로를 질시하며 "같은 계급 내에서 존엄성을 위해 경쟁"하는 구조인 "희생의 역설"은 한국의 교육열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부모의 희생이 자녀의 성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압박이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을 낳는 현실이 그대로 반영됩니다.
2-3. 지위에서 생존으로
2023년 재판 서문에서 “센넷”은 다음 세 가지 근본적 변화를 강조하는데 이 변화는 한국에서 더 극적으로 나타납니다. 88만 원 세대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센넷”이 지적한 존엄성 회복 불가능한 구조는 오늘날 비정규직, 청년 실업자, 방구석 청년들에게 더욱 절실합니다.
2-3-1. 능력주의의 극대화
"노력하면 성공한다."라는 신화가 더욱 교묘해져 실패자를 개인의 탓으로 몰아갑니다.
2-3-2. 상처의 본질 변화
과거에 사회적 인정 문제였던 상처가 오늘날에는 생계 위협으로 연결됩니다.
2-3-3. 계급의식의 소멸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이 해체되면서 저항마저 어려워졌습니다.
2-4.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한 서평자는 이 책을 읽으며 "피가 끓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분노보다 씁쓸함과 절망이 더 컸다고 했는데 50년 전 미국의 문제가 지금은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영화감독의 꿈을 접고 고급 아파트 상가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의 "놀던 물보다 급수가 높은 물에서는 숨 쉬기가 힘들다."라는 고백은 상징적입니다. “센넷”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단순하지 않지만 그는 "계급의식이 투철한 사회"를 희망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계급투쟁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 가지 전환을 의미합니다.
2-4-1. 개인 → 공동체
나의 실패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
2-4-2. 경쟁 → 연대
같은 처지의 이들과 서로를 인정하는 문화
2-4-3. 입증 → 존재
능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존재에서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로의 패러다임 전환
3. 결론
"내 나이 여든 살, 계급 전사로서 나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계급의식이 더 투철한 사회가 오길 희망한다."라는 82세 “센넷”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사회 분석서가 아니라 "왜 나는 부족한가"라는 질문이 실제로는 "누가 우리를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이어야 함을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이 책이 주는 경고는 더욱 절실합니다. 능력주의가 신으로 군림하는 사회, 계급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는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 상처를 숨기고 있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센넷”이 반세기 전에 던진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엄성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오늘도 유효하며 그 답을 찾는 여정이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합니다.
"능력주의는 표면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구조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가장 교묘한 방식이다"(리처드 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