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 브로츠와프의 쥐들: 카오스(Szczury Wrocławia: Chaos)
1. 개요
1962년 7월 26일 폴란드 남서부의 역사적 도시 “브로츠와프”(Wrocław)에서 태어난 “로베르트 예지 슈미트”(Robert Jerzy Szmidt)는 냉전 시대의 정치적 억압 속에서도 특별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습니다. 선원 훈련을 받았지만 정작 선원으로 일한 적은 없는 그의 이력은 예측 불가능한 인생 여정을 암시합니다. 1980년대 초반 폴란드 SF 팬덤 커뮤니티에 합류한 그는 팬덤 활동을 통해 창작의 기반을 다졌으며 특히 “스핑크스 상”(Sphinx Award) 공동 창설에 참여했는데 이 상은 후에 폴란드 SF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자이델 상”(Zajdel Award)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1. 비디오 잡지에서 게임 저널리즘까지
그의 경력은 문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그는 앰버 출판사 판매 대표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폴란드 최초의 합법적인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그의 혁신적인 움직임은 잡지 창간으로 이어집니다. ‘Video Business’와 ‘Video Premiery’를 창간하여 폴란드 비디오 시장의 초기 문화 기록자 역할을 하였고 ‘PlayStation Plus’와 ‘Player Station Plus’ 편집자로서 게임 저널리즘 선구자로 활동함은 물론 번역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하였는데 이 같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업계 경험은 그의 SF작품에 현실감 있는 미래 묘사와 기술적 디테일을 부여했습니다.
1-2. 폴란드 SF 리부트
2000년대 들어 “슈미트”는 본격적으로 폴란드 SF 장르의 체계화에 나섭니다. 월간지 ‘Science Fiction, Fantasy & Horror’를 창간하여 동유럽 판타지, 호러 장르의 교두보 확립하고 2004년에는 “노틸러스 상”(Nautilus Award)을 설립하여 신인 작가 발굴에도 노력을 기울였으며 2015년 “올해의 브로츠와프인(Wrocławianin Roku)”상을 수상하며 고향에 대한 문화적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폴란드 문학비평계는 "그는 폴란드 SF를 동유럽의 지하문화에서 세계무대의 주류로 끌어올렸다"라고 평가합니다.
1-3. 번역가 슈미트
그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번역가로서도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이는데 특히 글로벌 SF 명작을 폴란드어로 소개하며 장르 독자층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런 작업들은 그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쳐 ‘브로츠와프의 쥐들’에서는 미국 좀비 서사와 유럽적 정치 알레고리가 혼종 된 독특한 스타일을 창출해 냈습니다.
1-3-1. “잭 캠벨”(Jack Campbell 1956~)의 ‘Lost Fleet: Fearless’: 군사 SF의 전투 서사와 전략적 디테일을 폴란드어로 정교하게 재현
1-3-2. “제임스 처치”(James Church 1947~)의 ‘Death in the Koryo’: 추리 장르에 아시아적 정서를 결합한 실험적 번역
1-3-3.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 1948~)의 ‘Spook Country’: 사이버펑크 대가의 테크놀로지 철학을 동유럽적 시각으로 해석
1-4. 한국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
“슈미트”의 작품은 분단국가의 트라우마와 권위주의 통치 경험을 가진 한국 독자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브로츠와프의 쥐들’에 등장하는 봉쇄된 도시의 묘사는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을 연상시키며 좀비 사태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윤리적 해체는 자본주의 극한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번역가 "정 보라"의 한국어판(2025)은 폴란드의 1980년대와 한국의 1980년대를 오버랩하는 해석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1-5. 슈미트 문학의 진화 방향
2025년 현재 카토비체에 거주하며 3부작 완결 편 작업 중인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새로운 도전을 암시했는데 가상현실(VR)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결합하여 독자의 선택에 따라 갈림길이 나뉘는 디지털 소설을 기획하고 있으며 AI 감시 사회로 인한 디스토피아, 한국과 일본 SF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합동 앤솔로지 기획을 논의 중에 있다고 합니다. “로베르트 J. 슈미트”는 단순한 SF 작가가 아닙니다. 폴란드 현대사의 증인이자 기술 문명의 예언자이며 억압된 자들의 기록자로 그의 작품 속 좀비와 변종 생물체는 결국 체제가 낳은 괴물이며 인간 내면의 어둠을 가시화한 상징입니다. 2025년 한국에 소개된 《브로츠와프의 쥐들: 카오스》 는 단순한 좀비 서사를 넘어 "감염병 시대의 정치적 부패"와 "통제라는 이름의 폭력"을 고발하며 한국 독자에게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동유럽 문학의 깊이와 세계적 장르 트렌드를 결합한 그의 작품 세계는 앞으로도 권력과 인간성에 대한 경고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2. 내용
2-1. 폴란드 좀비 아포칼립스
2025년 2월 한국 독자들에게 냉전 시대 공산주의 폴란드의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독특한 장르 소설이 소개되었습니다. “로베르트 J. 슈미트”(Robert J. Schmidt)의 ‘브로츠와프의 쥐들: 카오스’(Szczury Wrocławia: Chaos)는 “부커 상” 최종 후보 작가 “정 보라”의 번역으로 767페이지의 방대한 분량 속에 1963년 폴란드 브로츠와프를 배경으로 출혈성 천연두 대유행 속에서 벌어지는 좀비 사태를 그립니다. 이 작품은 3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감염 확산 첫 12시간 동안의 혼돈을 집중 조명하며 생존을 위한 잔혹한 선택을 강요받는 인물들의 군상 극을 통해 권위주의 체제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2-2. 핵심 테마
"한국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단순한 좀비물이 아니라 생존과 통제를 둘러싼 현실의 은유이다"라는 출판사 설명은 이 소설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작품 속 좀비 사태는 다음과 같은 다층적 의미를 지닙니다.
2-2-1. 역사적 병치
“정 보라” 번역가는 작품 기획 동기를 "1960년대 공산주의 폴란드의 억압과 부조리에서 군사독재 치하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며"라고 밝혔습니다. 식민 지배, 전쟁, 분단, 군사독재라는 유사한 역사를 공유한 두 나라의 경험이 작품 해석에 깊이를 더합니다.
2-2-2. 체제 비판의 도구
좀비는 공권력의 통제 실패와 체제의 부패상을 상징합니다. 권위주의 사회에서의 좀비 군상 극은 감염 병 위기대응의 무능함을 고발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잔혹한 선택을 통해 인간성의 상실 과정을 드러냅니다.
2-2-3. 문학적 쥐의 상징성
쥐는 문학사에서 인간의 내면적 공포(죄책감, 탄압된 욕망)를 상징해 왔습니다. “브람 스토커”(Bram Stoker 1847~1912)의 ‘The Judge’s House‘에서 법관의 잔혹성을 의인화한 쥐부터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에서 ‘vermin’(해충)이 유대인 박해를 은유한 것처럼 이 작품의 쥐/좀비는 공산 체제의 부조리를 체화합니다. 64쪽의 "늙은 쥐들이 가라앉는 배에서 도망치고 있어, 형제"라는 “브란디스”의 대사는 체제 붕괴 앞에서의 생존 본능을 암시하며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긴 싫으니까"라는 뒤이은 문장은 저항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2-3. 서사 구조
작품은 감염 시작부터 12시간이라는 압축된 시간대 안에서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추적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좀비 서사와 차별되는 점입니다.
2-3-1. 다중 시점의 교차
밀주꾼의 집에서 간호학교, 소방서까지 공간을 가로지르며 정치적 억압에 시달리는 시민, 체제 순응자, 저항 세력의 시선을 교차시킵니다.
2-3-2. 현실감 있는 공포
"무엇이 감염을 일으키는가? 언제 어디서 또 좀비가 나타날 것인가?"라는 질문은 독자를 혼돈의 중심으로 끌어넣으며 좀비의 물리적 위협보다 체제의 부패로 인한 인간성 붕괴에 초점을 맞춥니다. "몇십 분 만에 그의 삶은 의미를 잃었다. 부조리한 살인으로 자신의 파멸에 도장을 찍어 완벽하고도 돌이킬 수 없게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100쪽) 이 문장은 극한 상황에서의 도덕적 해이가 개인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2-4. 한국적 재해석
“정 보라” 번역가는 이 작품을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닌 문화적 번역으로 접근했습니다. 768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은 원작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한국어 독자에게 "가속페달만 있는 자동차가 내리막길을 달리는 느낌"(추천사)을 선사합니다.
2-4-1. 역사적 유사성의 부각
폴란드의 공산 정권과 한국의 군사독재 경험을 연결해 "유사한 역사를 공유한다"라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2-4-2. 문학적 실험
“부커 상”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의 작가답게 혼돈 속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현실을 한국어로 생생하게 재창조했습니다.
2-5. 장르 문학의 새로운 지평
이 작품은 단순한 공포 소설을 넘어 장르 문학의 사회 비판 가능성을 증명합니다. 좀비 아포칼립스에 냉전 이데올로기를 접목해 SF와 호러를 권력 비판의 도구로 승격시켰고 COVID-19 팬데믹 시대에 봉쇄된 도시와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더욱 생생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인간이 좀비보다 무서운 세상을 묘사하여 팬데믹 시대의 인간성을 예리하게 통찰합니다. "로베르트 슈미트“는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1960년대 폴란드의 회색빛으로 가득한 음울한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하여 잊을 수 없고 소름 끼치는 경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합니다.
3. 결론
이 소설은 권위주의 사회에서 공권력이 주도하는 좀비 군상 극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감시 체계와 개인의 소외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특히 한국 독자에게는 1980년대 군사독재의 기억과 COVID-19 팬데믹의 트라우마를 동시에 환기시키며 통제와 생존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새롭게 사유하게 합니다. 이 작품은 3부작의 서곡으로 이후 전개될 완전한 사회 붕괴와 저항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합니다. 폴란드의 어두운 역사가 한국의 현실과 교차하는 이 작품은 장르 문학이 결코 오락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걸작입니다.
"브로츠와프의 폐허는 나의 상상력에
영원한 연료가 되었다"(로베르트 슈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