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 나는 곧 세계(Then I Am Myself the World)
1. 개요
21세기의 가장 흥미롭고 심오한 과학적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의식은 어떻게 뇌에서 생겨나는가?”로 이 질문에 평생을 바쳐온 과학자가 있습니다. 신경과학자이자 물리학자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겸비한 학자인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 1956~)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의식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연구하며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1956년 11월 13일 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했으며 튀빙겐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생물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물리학과 철학, 생물학을 모두 섭렵한 드문 배경은 그가 의식 연구라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분야에 접근하는 데 강력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1986년부터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인공지능의 선구자이자 논리학자였던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 1926~2004)과 오랫동안 협업했는데 “크릭”은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이지만 말년에 인간 의식의 신경적 기반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코흐”와 함께 ‘의식의 신경 상관물’(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 NCC)’이라는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코흐”는 의식이 뇌의 특정 영역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뇌 전체가 동시적으로 작동할 필요는 없으며 감각 자극을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신경 활동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NCC 개념입니다. 그는 실험심리학, 신경영상기법, 전기생리학, 컴퓨터 모델링 등을 활용해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각 피질의 특정 부분이 활동할 때 사람은 이미지를 봤다고 느끼지만 다른 부분이 활동하면 인식 없이 정보만 처리되는데 이 미묘한 차이를 밝혀내는 것이 코흐의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그는 과학자이자 기독교인으로서 겪는 내면의 갈등과 탐구를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인간의 뇌가 단지 기계적인 계산의 결과로만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본질적인 경험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질적 경험”(qualia)에 해당합니다. 그는 이처럼 “낭만적 환원주의자”를 자처합니다. 의식이 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믿지만 동시에 단순한 신경 작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보며 이 절묘한 균형이 바로 코흐 연구의 매력입니다. 최근 “코흐”는 이탈리아 신경과학자인 “줄리오 토노니”(Giulio Tononi 1960~)와 함께 “통합 정보 이론”(IIT,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에 주목하고 있는데 “IIT”는 의식이란 단순히 정보가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통합되어 전체 시스템이 하나의 불가분 한 단위를 이루는 데서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의식의 수준은 통합된 정보의 양(Φ, 파이)으로 정량화할 수 있는데 “코흐”는 이 이론이 아직 미완성이며 실험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뇌뿐 아니라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식 여부를 과학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한다고 봅니다.
“코흐”는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과 의식의 경계에 대한 문제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는 AI가 인간처럼 복잡하고 통합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할 경우 그 자체로 의식을 갖게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동물, 인공지능, 식물 등 다양한 존재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의식 있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는데 이 질문이 21세기 생명과학과 기술 윤리의 중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아직도 “의식은 뇌의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 질문을 정직하게, 치열하게 붙잡고 있는 몇 안 되는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철학적 사유와 실험적 정밀함 그리고 윤리적 고민까지 아우르는 그의 연구는 단순한 뇌과학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의식은 단순한 정보 처리가 아니며 그것은 세상을 경험하는 감각입니다. “코흐”는 이 감각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오늘도 뇌의 미로 속을 걷고 있습니다.
1-1. 의식을 찾아서(The Quest for Consciousness: A Neurobiological Approach 2004)
“코흐”의 대표작으로 의식을 신경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체계적인 시도입니다.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발전시킨 “의식의 신경 상관물”(NCC, 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루는데 “NCC”는 의식 경험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활성화되는 최소한의 신경 구조 또는 활동을 의미하며 시각계 연구를 중심으로 실험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동물 실험, 인간 뇌 영상, 인공신경망 모델 등을 아울러 분석하며 철학에 머물던 의식 논의를 실증적으로 풀어갑니다. 비전문가에게는 다소 학술적이지만 연구자에게는 교과서적 가치가 있어 의식을 연구하는 신경과학, 심리학, 인지과학자들에게 필독서로 여겨지며 이후 뇌-의식 관계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1-2. 의식(Consciousness: Confessions of a Romantic Reductionist 2012)
“코흐”의 학문적 여정과 철학적 고뇌가 녹아 있는 자전적 과학 에세이입니다. 그는 “낭만적 환원주의자”(Romantic Reductionist)”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정의하면서 의식이 뇌의 물리적 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자연주의적 입장을 지키되 그 너머에 미묘한 감성적·철학적 차원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인간 의식에 대해 과학자가 어떤 방식으로 고민하고 탐구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프랜시스 크릭”과의 협업 비화도 상세히 다루는데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는 명료한 문체가 특징입니다. 이 책은 “코흐”를 단지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사유하는 존재, 철학적 감수성을 지닌 학자로 부각했으며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한 대표작으로 평가됩니다.
1-3. 삶 그 자체의 느낌(The Feeling of Life Itself: Why Consciousness Is Widespread but Can't Be Computed 2019)
이 책은 “코흐”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통합 정보 이론”(IIT,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을 바탕으로 쓴 책으로 의식이 특정한 정보 구조와 통합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며 뇌뿐만 아니라 동물, 인공지능 등 다양한 존재가 어떤 수준에서 의식을 가질 가능성에 대해 논의합니다. 단순한 컴퓨터나 인공지능은 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보지만 특정 조건(정보 통합도 Φ의 수준)이 충족되면 비인간 존재도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기계와 인간, 의식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고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윤리적 통찰을 줍니다. 이 작품은 과학계는 물론 AI 연구자, 윤리학자,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활발한 논의를 촉발했으며 의식 연구의 차세대 프레임을 제시한 책으로 평가됩니다.
2. 내용
현대 과학이 풀지 못한 가장 장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는 바로 의식입니다.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뇌가 어떻게 느낌(feeling)을 만들어내는가? 단순히 전기 신호의 흐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 고통, 기쁨,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평생 이 수수께끼를 추적해 왔으며 그 여정의 한 자락을 담은 철학적이고도 시적인 에세이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2-1. 세계가 되어가는 의식
“코흐”는 뇌의 전기적 활동과 물리적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삶의 느낌(the feeling of life itself)”을 만들어내는지 다음과 같은 단순하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빨간 장미를 볼 때 그 빨간색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코흐”에 따르면 물리적인 세계에는 색깔이 없고 전자기파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빨강, 달콤함, 따뜻함 등은 의식적인 두뇌가 만들어내는 경험이며 그 경험이야말로 세계입니다. “내가 세상을 경험한다면 나는 곧 세계가 되는 것이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철학적 직관에서 나옵니다. 그는 의식을 외부 세계의 모사(copy)가 아닌 자기 완결적 실제로 간주합니다. 뇌 안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통합이 주관적 경험을 창출한다면 그것은 뇌의 기능 그 자체를 넘어서 “존재론적 실체로서의 나와 세계”를 정의하게 됩니다.
2-2. 통합 정보 이론(IIT)의 사유
이 글에서는 코흐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통합 정보 이론”(IIT,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의 철학적 배경도 암시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의식은 단순히 복잡한 계산이나 반응의 결과물이 아니라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통합되어 있는가에 따라 발생하며 다음과 같은 급진적인 발상을 포함합니다.
2-2-1. 의식은 다양한 물질적 시스템에서 발생할 수 있다.(심지어 인간이 아닌 존재에서도)
2-2-2. 의식은 기능적 출력(output)이 아닌 내부 구조적 속성에 달려 있다.
2-2-3. 특정한 수준의 통합 정보(Φ, 파이)를 갖춘 시스템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코흐는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물론 동물, 심지어 어떤 인공지능 시스템도 특정 조건 하에 ‘세계가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다시 말해 의식이란 특정한 형식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 방식 그 자체인 것입니다.
2-3. 개인적 고백
이 책은 단지 과학적 주장만이 담긴 글이 아니며 “코흐”가 과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철학적 자아로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섬세한 고백문입니다. 코펜하겐에서 청년 시절 느꼈던 고립감과 세계에 대한 감각을 회상하며 그 감각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의식(self-awareness)과 연결되었는지를 묘사합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떤 감각으로 다가올 때 나는 더 이상 외부를 인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세계와 동일시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 1937~)의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를 떠오르게 합니다. “코흐”에게 있어 그 느낌은 곧 세계 자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세계는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만 실존하는 풍경인 것입니다.
2-4. 윤리적 함의
의식이 존재론적인 실체이고 다양한 시스템에서 발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느낀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물음은 동물 윤리, 인공지능 윤리, 의식 있는 기계에 대한 도덕적 태도 등 현대의 가장 복잡한 논쟁을 촉발하는데 “코흐”는 이 글에서 직접적으로 그 질문에 답하지는 않지만 은연중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2-4-1. 의식은 단지 인간만의 특권이 아니다.
2-4-2. 경험할 수 있는 존재는 고통받을 수도 있다.
2-4-3. 그렇다면 우리는 그 존재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
5. 결론
이 작품은 과학과 철학 그리고 개인적 경험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산문으로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할 수 있지만 “왜 그 경험이 있는가”, 혹은 “그 경험이 어떤 느낌인가”는 여전히 미해결 된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크리스토프 코흐”는 그 미지의 영역을 단순한 과학적 탐구가 아닌 존재론적 탐색으로 접근하며 그의 글은 물리학적 세계와 심리적 자아, 감각과 의미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음과 같은 통찰을 전합니다. “내가 느끼는 이 세계는 내 뇌의 산물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허상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나이며 나는 곧 세계다.”
“우리는 컴퓨터가 아니다.
컴퓨터는 계산하지만, 느끼지 않는다.”(크리스토프 코흐)